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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들렝친의 공작탑

돌니실롱스크 Dolny Śląsk의 시에들렝친 Siedlęcin에 위치한 가장 중요하고 인상적인 중세시대 폴란드 기념 건축물 중 하나입니다. 이곳은 카차프스키에 Kaczawskie 산맥과 코틀리나 옐레니오구르스카 Kotlina Jeleniogórska가 접하는 옐레니아 구라 Jelenia Góra의 북쪽이자, 부브르 Bórb강의 오래된 교차점이 위치했던 곳입니다. 이곳은 볼코 1세 수로비 Bolko I Surowy의 아들이었던 헨리크 1세 야보르스키 Henryk I Jaworski가 1320년 거주 목적으로 탑을 지은 곳으로, 오늘날 폴란드에서 가장 크고 잘 보존된 탑이자 유럽에서도 손꼽히게 잘 보존된 탑입니다.

22,2 x 14,35 m 넓이의 직사각형 평면 위에 지어진 탑의 원래 지붕은 톱니바퀴 형상을 하고 있었으나, 현재 남은 지붕 형태는 16세기 후반에 추가된 형태입니다. 시에들렝친 탑의 천장은 폴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천장 중 연륜 연대학의 방법을 사용한 1313-1314년의 것입니다. 1층의 대들보에는 1313년에 잘린 나무가, 2,3,4층 대들보는 1314년에 잘린 나무가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탑을 대표하는 특징에는 다른 것이 있습니다. 이 탑에서 가장 흥미롭고 보물 같은 요소는 2층 연회장 벽의 아름다운 벽화입니다. 세속적인 이야기를 주제로 한 폴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다색 벽화로, 아서왕이 아끼던 기사인 란슬롯 경의 이야기가 담긴 아서왕 전설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남은 벽화 가운데 이 이야기를 주제로 한 것은 이곳이 세계 유일무이합니다.

 

헨리크 공작이 언제 이 탑의 시공 명령을 내렸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이와 관련된 가설 중 하나는 합스부르크 공작부인이자 헨리크 조카인 시비드니차 Świdnica의 왕자 볼코 2세 마위 Bolko II Mały의 아내 아그니에슈카 Agnieszka와 관련된 것으로, 벽화를 그린 화가가 이들과 함께 실롱스크 Śląsk에 왔다고 전해집니다. 이를 미루어 볼 때 벽화는 1338년 이후 완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취리히 및 콘스탄틴지역의 그림과 비슷한 화풍을 가진 시에들렝친 벽화는 스위스 출신의 작가가 그렸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유럽 궁중문화 전문가인 야체크 비트코프스키 Jacek Witkowski의 주장에 따르면 란슬롯 경에 대한 모험담은 시에들렝친의 벽화 작업에 영감을 주었고, 헨리크 공작이 쾰른을 방문했을 때 이 탑은 그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헨리크 공작은 쾰른의 라인란트 귀족과 친분을 유지하였고, 아내인 공작부인 아그니에슈카는 트리어에서 쾰른까지 서부 독일 순례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최근 발견에 따르면 벽화는 1320년에서 30년 사이 제작되었습니다. 프레스코화는 달리 마른 석고 위에 알 세코 기법을 사용해 카멜롯 성(城)과 기네비어 여왕 궁전을 묘사하였고, 멜레어건트에게 당한 납치와 란슬롯에 의해 석방된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사과나무 밑에서 자는 란슬롯, 성 크리스토퍼의 가드에서 자고 있는 라이오넬, 기사 지휘관, 기사와 아가씨 또는 기사와 아내의 모습 또한 벽화에 묘사되어 있습니다. 사그라모어와 란슬롯의 결투와 우리 드 홍그레 Urry de Hongre의 회복이 묘사된 그림은 완성되지 못한 채로 남아있습니다. 2001년 후두프 Chudów 성(城) 재단에서 이 탑을 관리하기 시작했을 때, 다색 벽화는 아주 심각한 상태였지만, 2006년 전체적으로 진행된 유지 및 관리로 원래의 상태를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헨리크 야보르스키는 폴란드 최초로 아서왕을 주제로 벽화를 제작한 공작이기도 합니다. 사료에 기록된 헨리크 공작의 재정 문제는 이 탑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라는 의견이 있기도 합니다.

 

1346년 봄 헨리크 공작 사후, 탑의 소유권은 조카인 볼코 2세 마위에게 돌아갔고, 볼코 2세의 죽음 이후 소유권은 1368년 미망인 아그니에슈카에게 이전되었습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뒤, 이 탑의 소유권은 옌헨 폰 레데른 Jenchen von Redern 에게 판매되었습니다. 그때부터 탑은 기사 가문의 소유가 되었고, 이는 이름에 또한 영향을 주어 오랜 기간 '기사의 탑'으로 불렸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후두프 성 재단에서 탑의 관리를 맡게 되었고, 탑을 세웠던 이의 정체성과 원래 이름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탑의 이름은 이후 건축물에 살았던 이들의 입장이 아닌, 원 건축물의 기초를 세우고 그 곳에 함께 있었던 사람들의 입장이 반영되어 오늘날 '시에들렝친 왕자 거주 탑'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2008년 이후 매년 주기적으로 탑이 자리한 지역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가 야기엘론스키 대학교의 후원하에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연구를 통해 매년 새로운 사실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탑 건설 700주년을 기념해 2015년 3월에는 보조금을 받아 '고고학 연구에 따른 시에들렝친 왕자 거주 탑 - 700주년 기념 연구'가 진행되었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16년 탑 연구에 대한 7가지 연구 자료가 발간되었습니다.

 

이 탑은 매일 개방되며, 하절기(5월-10월)에는 오전 9시-오후 6시, 동절기(11월-4월)에는 오전 10시-오후 4시까지 방문하실 수 있습니다. 가이드 투어 또한 제공됩니다.